홈 > 게시판 > 훈민정흠
바둑 용어의 영어표현
글쓴이 이명수 id admin e-mail ahatool@naver.com
작성시간 2009/07/10/16:04 조회수 2041 ip ******
첨부파일 바둑.jpg


바둑의 세계화는 19세기 말, 일본이 유럽에 바둑을 보급하면서 시작됐다. 어느덧 세계 60여 개국에서 바둑이 두어지고 있고 바둑이 스포츠로 정체성을 바꾸면서 2010년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들어갔다. 올 10월엔 세계 마인드스포츠대회가 베이징에서 열린다. 바둑학이 생겨나고 세계 바둑학 학술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린 지도 꽤 오래됐다. 그러나 바둑의 세계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통일되기 힘든 바둑 룰에서부터 바둑 용어, 문화적 차이, 해외 바둑 지도자 부족 등 많은 문제가 진전을 가로 막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점검하고 바둑의 세계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기 위해 ‘글로벌 시대의 바둑’이란 시리즈를 통해 진전 될 것이다.『BADUK, Made Fun and Ease』바둑은 서양이 동양의 언어를 수입하고 소화해야 하는 몇 안 되는 종목 중 하나인데 과연 우리의 바둑 영어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의미는 서양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을까. 바둑 영어는 초창기엔 일본말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 이후 영어권에서 자체적으로 많은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do or die move(승부수), bamboo joint(쌍립), monkey jump(비마), thank you move(이적수) 등 재치가 번득이는 근사한 용어도 꽤 있다. 바둑책을 번역하거나 서양인에게 해설할 때 아직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문화적 차이가 강하게 함축된 단어, 즉 두터움(thickness), 감각(intuition), 일본어를 그대로 쓰는 뒷맛(aji) 같은 용어들이 대표적이다. 한국 용어 중엔 행마(haengma)가 유일하게 한국어 그대로 쓰이고 있다. 두터움이란 용어는 이미 바둑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두터움은 대단히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 의미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유단자라는 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걸 thickness로 표현한다면 서양인 등은 두터움을 알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 두터움은 ‘정의(情誼)나 인정이 많다, 또는 ‘사랑이 깊다’로 나와 있다. 바둑에선 엷음과 대비되는 용어인데 Thick란 단어는 미련하거나 고집불통 같은 부정적 뉘앙스도 있어 적합한 단어는 전혀 아니지만 아직 다른 좋은 단어를 찾지 못한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은 모두 후(厚)라는 한자로 표현된다. 두터움은 ‘모양이 두텁다’에서 시작됐지만 ‘형세가 두텁다’ ‘두터운 반집’ 등 많은 부분에서 플러스적 가치로 쓰인다. 중립 가치인 thickness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또 기세는 fighting spirit으로 쓰이는데 이건 투혼이지 기세는 아니다. 사실은 두터움이란 용어가 책을 한 권 써야 할 만큼 복잡한 의미가 있다. 바둑은 실리와 세력, 전투와 타협, 공격과 타개처럼 대부분의 용어가 선악을 논할 수 없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두터움과 엷음은 다르다. 엷음은 나쁜 것이고 두터움은 좋은 것이다. 고수들의 세계는 두터움을 알아보는 안목의 차이가 곧 실력의 차이로 귀결된다. 가령 기세의 경우 서양에선 이해가 안 되니까 over play로 오해하곤 한다. 특히 두터움은 한국에서조차 세력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동양의 바둑 용어는 자못 추상적이고 함축적인데 반해 서양은 언어의 투명성을 원하기 때문에 바둑 용어도 미운 정, 고운 정처럼 설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권에서도 서서히 두터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