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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글쓴이 이명수 id admin e-mail ahatool@naver.com
작성시간 2009/07/28/14:47 조회수 1910 ip ******
첨부파일 을사조약.jpg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강제 체결됐다. 당시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수옥헌(漱玉軒.덕수궁 별채(서울 중구 정동 소재) 코 앞에 하세가와의 사령부가 있었다. 하세가와가 머문 곳은 지금의 조선호텔 바로 건너편에 있던 '대관정(大觀亭.서울 중구 소공동)'이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데 100년 전의 계단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100년 전 을사조약 당일(11월 17일) 대관정을 나서 마차에 오른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대장과 일본에서 급파된 이토 히로부미 특사의 사진이다. 대관정에서 수옥헌까지는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대관정은 본래 대한제국 황실의 영빈관이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부터 대관정을 하세가와가 무단 점령합니다. 그때부터 일본은 서울의 주요한 공공기관을 대부분 접수하기 시작하지요. 고종황제가 살던 수옥헌에서 가장 가깝고 잘 지은 건물인 대관정을 하세가와가 자신의 사령부로 선택한 것이다. 대관정이야말로 을사조약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데 빠져선 안될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한제국 황실 바로 앞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모양새이다. 운명의 17일 일본의 두 수뇌부가 대관정에서 초조하게 하야시 공사의 전갈이 오기를 기다린다. 한 명은 하세가와 대장. 그의 옆에는 일본 본국에서 특별히 파견한 이토 히로부미 특사가 서 있었다. 그날 오후 6시30분경 하야시 공사의 전갈이 도착했다. 기다렸던 을사조약 체결문서는 오지 않았습니다. 전갈은 '한국 측 반대를 꺾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하세가와와 이토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헌병들을 데리고 고종 황제가 있던 수옥헌으로 마차를 타고 갔다. 그리고 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멀리 떨어진 용산이 아니라 바로 코 앞에서 무력시위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황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하세가와는 스스로 한국 병합의 1등 공신이라고 자부하고 다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하세가와의 공로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일본의 강압성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소공로 일대를 하세가와길(長谷川町)이라고 명명하는 걸로 하세가와 대장의 공로와 명예를 살려줬다. 을사조약 100년을 맞아 그날 하루의 일정만 간략히 재구성해 봐도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조약을 체결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일제가 을사조약 체결 당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 문서는 1905년 11월 20일 에드윈 모건 주한 미국공사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과의 협상장에 들어갔을 때 일본 헌병들이 협상장 발코니와 하나뿐인 뒷문을 막고 서 있었다. 헌병 배치가 한국 황제에게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부적절함을 인식시키기 위해 활용됐다. 조약 조인이 완전히 자유롭게 이뤄졌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